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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심재율 객원기자
2017-02-02

남극 지하에서 발견된 냉동미녀 과학서평 / 시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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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

‘주민은 각자 반나절 동안 5일을 일해야 했는데, 이 시간은 조각조각 분배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더 일할 수 있었고, 일을 덜 하거나 아예 안 할 수 있었다. 노동은 보수를 받는 일이 아니었다. 일을 덜 하기로 한 사람의 예산(정부가 주는 돈)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아예 일 하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는 생존하는데 쓰고 가까스로 남을 만큼의 예산이 주어졌다.’

미국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프랑스 SF소설

물론 이 말은 그가 쓴 소설 ‘시간의 밤’의 한 부분이다. 소설은 90만 년 전에 전쟁으로 사라진 ‘곤다와’의 대학총장 ‘코반’이 인류보존을 위해 냉동보관한 ‘엘레아’가 남극 대륙 지하 1,000m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계 17개국 연합과학자들이 이 얼음유적지 발굴에 나서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마침내 과학자들은 유적지를 발굴하고, 냉동미녀 엘레아를 깨운다..

프랑스 식 SF는 어떤 방식일까 싶은 책 ‘시간의 밤(La nuit des temps)’은 과연 50년 전에 쓴 책일까 놀라게 할 만큼,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변화를 암시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르네 바르자벨 지음, 김희진 옮김/ 아침이슬 값 13,000원 ⓒ ScienceTimes
르네 바르자벨 지음, 김희진 옮김/ 아침이슬 값 13,000원

‘일하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는 생존하는데 쓸 돈을 준다’는 대목은, 최근 유럽 일부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정액을 주는  '기본소득(basic income)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만유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 때문이다. 에너지에서 직접 먹을 것을 생산하고 생필품을 만들어낸다. 50년전 SF소설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과학기술은 지금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기적같은 일들을 인간에게 선물하고 있다.

‘시간의 밤’이 처음 나온 시점은 1968년이다. 이 책의 과학적 상상력은 지금 돌아봐도 정말 앞서갔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 중 하나는 만국어 번역기이다.

남극 지하 1,000m 아래에서 의문의 신호가 들린다. 남극 지하 유적 탐사에 나선 17개국 연합과학자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번역기이다. 과학자들은 전세계 슈퍼 컴퓨터를 동원해 개발한 다국어번역기를 귀에 꽂고 대화를 나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0만 년 전 인물인 미녀 엘레아의 말도 마침내 번역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엘레아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을 생생한 화면으로 재생해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TV중계로 보여준다. 최근 뇌과학자들이 뇌에 저장된 기억과 영상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국어 번역기에, 기억 영상재현 등장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매 번 수 백 만명의 관객들을 동원하는 미국 SF영화  시리즈 영화 - 캡틴 아메리카, 어벤저스, 토르 등등 - 가 떠오른다.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 다양한 등장인물,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과학이야기가 ‘시간의 밤’에 깔려 있다.

그리고, 소설에 충실하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인문학적 주제는 전쟁과 배신과 사랑, 그 중에서도 특히 완전한 합일을 지향하는 남녀간의 사랑이다. 엘레아는 그의 사랑 파이칸과 함께 남극 지하 유적지에서 핵무기가 터지면서 최후를 맞는다. 핵무기를 상정한 것은 물론, 당시만 해도 사라지지 않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핵무기 경쟁에 대한 우려를 보여준다.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었고 신문기자였으며, 수많은 과학소설과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죽는 날까지 소설을 쓰다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마지막 작품은 완성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르네 바르자벨(René Barjavel 1911~1985)이다.

아마 그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 독자에게 아주 유명한 작가로 추앙을 받았을 것 같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그는 대단히 유명한 SF작가였다. 그의 소설엔 시적 상상력과 매우 뛰어난 묘사가 어우러져서 ‘ 현대문명의 예언자’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는 1943년 소설에서 ‘시간의 파라독스’를 제시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자기 선조 중의 한 사람을 죽인다면, 그 어떤 사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자기 선조를 죽일 수도 없다.’

심재율 객원기자
kosinova@hanmail.net
저작권자 2017-02-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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