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2,2017

낚싯대에 그립이 있는 이유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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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우연히 낚시 예능프로그램을 봤다. 이덕화, 이경규, 마이크로닷 세 사람이 바다낚시를 하는 모습인데 한참 보다보니 오래 전 끊은 낚시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기다림’이 낚시의 미덕이라지만 낚싯대를 채서 들어 올릴 때 느껴지는 독특한 진동, 즉 ‘손맛’의 짜릿함이 없다면 낚시를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설프게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가는 고기를 놓치기 일쑤다. 따라서 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 때 낚싯대를 살짝 쥐고 있다가 ‘이때다’ 싶은 때 순간 잡아채야 한다.

보통 낚싯대는 딱딱하면서도 어느 정도 탄력성이 있는(부러지면 안 되니까)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손으로 쥐는 부분에는 고무(실리콘)가 얇게 코팅된 그립(grip)이 있다. 만일 그립, 즉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된 손잡이가 없다면 낚싯대를 채는 순간 삐끗해서 물고기를 놓치는 일이 많을 것이다(특히 물고기가 클수록). 사실 낚싯대뿐 아니라 골프클럽이나 테니스라켓처럼 막대를 감아쥔 손에 순간적인 힘을 줘야 하는 장비는 다들 그립이 있다. 힘의 갑작스런 변화에 미끄러지지 않게, 즉 마찰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런데 왜 딱딱한 표면을 쥘 때는 마찰력이 작고 부드러운 표면을 쥘 때는 마찰력이 높은 걸까.

쥐는 손에서 땀 나와 마찰력 높아져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10월 10일자에는 유리와 실리콘(PDMS)을 대상으로 검지 끝을 접촉했을 때 실제 서로 닿는 면적과 마찰력의 변화를 측정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실리콘의 그립감이 좋은 건(착 달라붙는다는 느낌) 손가락을 대자마자 접촉하는 면적이 넓어 마찰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물질을 탄성중합체, 즉 고무와 같은 성질을 지닌 물질이라고 부른다.

반면 유리의 경우 똑같이 손가락을 댔음에도 실제 접촉하는 면적이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넓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20초쯤 꼭 쥐고 있어야 그립감이 좋아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유리에 손가락을 대고 있을 때 그 접촉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A는 유리(위)와 탄성중합체(아래)에 검지 끝을 갖다 댔을 때 실제 접촉면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2초가 지났을 때 둘 사이의 접촉면 차이가 크지만 62초가 지났을 때는 비슷하다. B는 접촉 시간에 따른 마찰계수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탄성중합체는 쭉 큰 값인 반면 유리는 작다가 증가해 20초 쯤 지나 정점에 이른다. 실리콘 같은 탄성중합체가 그립 소재로 널리 쓰이는 이유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A는 유리(위)와 탄성중합체(아래)에 검지 끝을 갖다 댔을 때 실제 접촉면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2초가 지났을 때 둘 사이의 접촉면 차이가 크지만 62초가 지났을 때는 비슷하다. B는 접촉 시간에 따른 마찰계수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탄성중합체는 쭉 큰 값인 반면 유리는 작다가 증가해 20초 쯤 지나 정점에 이른다. 실리콘 같은 탄성중합체가 그립 소재로 널리 쓰이는 이유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피부는 혈관의 존재 유무에 따라 바깥쪽 표피와 안쪽 진피로 이뤄져 있다. 찰과상을 입었을 때 피가 나면 진피까지 손상된 것이다. 표피는 다시 네 개 층으로 나뉘는데 진피와 접촉해 있는 맨 아래쪽 기저층에서 유극층, 과립층을 거쳐 맨 위, 즉 피부 표면을 이루는 각질층까지다. 기저층에서 세포분열로 만들어진 표피세포가 위로 밀려 올라가며 형태변화를 거쳐 최종적으로 각질층이 된 뒤 떨어져 나간다. 이 주기가 대략 한 달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고 만지는’ 피부는 각질층이다.

각질층을 이루는 세포는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이 주성분인데 케라틴은 구조에 따라 결정성과 비결정성 두 가지로 나뉜다. 둘의 차이는 수분의 흡수 여부로, 결정성은 수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비결정성은 잘 빨아들인다.

한편 손가락 끝은 매끄러운 표면이 아니라 마루와 골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루의 전체적인 패턴을 우리는 ‘지문’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손가락 끝을 유리에 대면 마루가 접촉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그 면적이 얼마 되지 않는다. 각질층을 이루는 세포의 수분함량이 낮아 케라틴이 딱딱해 표면이 우툴두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가락을 계속 대고 있으면 피부의 땀샘에서 땀이 분비되면서 비결정성 케라틴이 수분을 흡수해 마루의 각질층이 부드러워지면서 유리에 닿는 면적이 늘어나 마찰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논문의 제목은 ‘펜에 고무 같은(rubbery) 그립이 있는 이유’로 펜에서 손가락으로 쥐는 부분에 실리콘이 코팅돼 있는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보니 필자의 필통에도 그립이 있는 볼펜이 하나 보인다. 아마 모임에 갔을 때 받아온 걸 꽂아둔 것 같다. 평소 만년필과 연필만 쓰는 필자는 이번 기회에 한 번 쥐어봤지만 그립감이 좋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펜처럼 쥐는데 큰 힘이 필요하지 않고 따라서 미끄러져 놓칠 일이 없는 경우 굳이 그립이 있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실제 대부분의 펜과 연필에 그립이 없는 것도 그래서 아닐까. ‘낚싯대에 고무 같은 그립이 있는 이유’가 논문 제목으로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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