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4,2017

나폴레옹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

박지욱의 메디시네마(86) 나폴레옹 토레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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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전투, 포르투갈어인 영화 제목의 원래 의미는 ‘웰링턴 방어선’ 정도 됩니다. 웰링턴은 영국의 장군 이름이고,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이 영화에는 나폴레옹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1789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1792년부터 프랑스는 이웃 나라와 전쟁을 치릅니다. 그 중 나폴레옹 전쟁은 1803년~1815년까지입니다. 모두 합하면 총 23년 동안 프랑스는 전쟁 중이었습니다. 전쟁 동안 프랑스군은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등을 짓밟으며 유럽 각국에 민폐를 끼칩니다. 처음에는 해방자였지만, 나중에는 침략군으로 변한 프랑스 군대 때문에 베토벤은 나폴레옹 교향곡의 이름을 영웅으로 바꿔야 했고(1804년), 철학자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쳤고(1807~8년), 고야는 프랑스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1808년).

으로 이름이 바뀐 베토벤 제3번 교향곡.

<영웅>으로 이름이 바뀐 베토벤 제3번 교향곡. ⓒ 위키백과

스페인 민중을 학살하는 프랑스군을 고발하는 고야의 .

스페인 민중을 학살하는 프랑스군을 고발하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 프라도 미술관 소장.

이베리아 반도 끝의 포르투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807년에 프랑스와 스페인이 합세하여 포르투갈을 침공합니다. 영국은 포르투갈을 지원하여 참전했고 웰즐리 장군(나중에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포 연합군이 부사코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지만, 수적인 열세 때문에 최후의 방어선으로 구축한 리스본 북쪽의 토레스로 작전상 후퇴를 합니다. 이 과정에 여러 나라의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 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토레스 방어선.  ⓒ 위키백과

토레스 방어선. ⓒ 위키백과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30년 동안 프랑스는 세계사의 핵이었고, 그 시절 프랑스가 낳은 가장 걸출한 인물은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969~1821)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의 군대는 유럽 곳곳에서 승전보를 전합니다. 하지만 승전의 기쁨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전사자와 부상병이 없는 전쟁은 없습니다. 상시 전시국가였던 나폴레옹시대의 프랑스는 유능한 군의관들도 많이 배출합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라레(Dominique-Jean Larrey; 1766~1842)입니다. 오늘은 나폴레옹과 라레의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프랑스가 점령한 이탈리아의 외딴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처럼, 라레도 스페인 국경과 맞닿는 피레네의 변방 산악지에서 태어납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과 의사인 삼촌의 손에 자란 라레는 자연스레 외과 의사로 가업을 잇게 됩니다. 하지만 라레는 대학에 입학할 꿈을 안고 파리로 상경합니다.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해군에 지원, 구축함 선의로 캐나다 앞바다에서 근무합니다. 6개월 만에 심한 뱃멀미로 귀환했는데, 이때 혁명을 맞습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던 대열에 라레도 동참합니다. 혁명이 시작되었고, 프랑스를 압박하는 반혁명 세력의 연합군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자(1792년) 라레는 라인 방면주둔군의 군의관으로 임명됩니다.

스트라스부르에 주둔 중에 라레는 부상병들이 제때에 후송되지 않아 치료도 받기 전에 목숨을 잃는 사실을 압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레는 고심을 했는데, 마침 프랑스군이 자랑하는 포병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포병들은 마차처럼 말이 끄는 포대를 운용하여 신속한 기동전을 폈는데, 라레는 포대 대신에 카트를 매달아 전장에 투입하여 부상병들을 신속하게 후송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부상병 후송용 구급 마차가 전장에 등장합니다(1793년).

라레가 고안한 야전용 날아다니는 앰뷸런스(flying ambulance).  ⓒ 위키백과

라레가 고안한 야전용 날아다니는 앰뷸런스(flying ambulance). ⓒ 위키백과

이 마차는 개량을 거듭하여 나중에는 전투 중인 야전에서 응급 수술도 가능한 이동식 야전병원으로 발전합니다. 얼마나 활약이 컸던지 당시에는 ‘날아다니는 앰뷸런스(flying ambulance)’로 불렸습니다(제11편 <무기여 잘 있거라> 참고).’ 이것이 바로 현대적인 이동식 외과 병원(MASH; Mobile Ambulatoty Surgical Hospital)의 효시로 봅니다. 프랑스군의 행렬 후방에는 부상병들을 후송할 수백 대의 구급마차가 따라갔는데, 이 장면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라레는, 의료진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량 환자 발생시에 사용하는 환자 분류체계인 ‘3단계 분류법(트리아쥬; triage)’을 발명합니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부상병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고 일손은 부족하게 됩니다. 당시의 군의관들은 부상자의 계급이 높은 순으로 치료했습니다. 하지만 라레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지금 즉시 치료를 안 해도 되는 사람/지금 치료해도 늦은 사람/지금 치료하면 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환자를 분류하면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지금은 노랑/검정/빨강의 색으로도 분류합니다. 라레의 분류법은 치료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혁명 정신마저 구현했네요(반면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포르투갈군은 종전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귀족이라고, 장교라고 먼저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네요).

아울러 라레는 솜씨가 아주 좋은 외과 의사였습니다. 특히 마취제도 사용하지 못했던 시절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재빠르고 정확한 절단 수술은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였답니다. 러시아 원정 중에는 매일 200여 건의 절단 수술을 해치웠다고 합니다.

프랑스 야전 의료계의 재주꾼인 라레와 3세 연하인 나폴레옹 대위는 1794년에 툴룽(Toulon)에서 처음 만납니다. 툴룽에서 왕당파를 무찌른 나폴레옹은 사단장으로 진급합니다. 아울러 1797년 이탈리아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는데, 라레의 활약이 마음에 들었든지 나폴레옹은 라레를 원정군의 수석 외과 군의관으로 임명합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라레는 전투 중에 전장에 투입하는 야전 앰뷸런스를 운용해많은 부상병들의 목숨을 건집니다. 이탈리아를 거쳐 오스트리아까지 점령한 젊은 장군 나폴레옹은 이듬해에는 이집트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됩니다. 역시 라레를 데려갑니다. 라레는 사막에서는 낙타를 이용한 앰뷸런스를 운용합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던 이집트 원정이었지만 영국 해군이 프랑스의 보급로를 차단합니다. 영국 해군의 기세에 눌린 나폴레옹은 육로를 이용해 시리아를 거쳐 오스만 투르크로로 진격합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영국군의 공격을 받고 라레마저 부상당합니다. 하는 수 없이 나폴레옹은 이집트로 회군하는데, 도중에 야파(텔 아비브)에서 페스트를 만납니다.

영국군보다 더 무서운 적인 페스트를 만난 나폴레옹, 군사들의 사기를 우려해 페스트는 전염성이 없다는 거짓 포고문을 내리고, 그 자신이 솔선하여 페스트 병원을 방문해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며 위문하는 대담한 행동을 합니다. 다행히도 나폴레옹은 페스트에 옮지 않습니다.

그로, , 1804년.

그로, <야파의 페스트 병원을 방문한 나폴레옹>, 1804년. ⓒ 루브르 미술관 소장

이집트로 되돌아온 나폴레옹은 병사들을 버리고 영국군의 해상 봉쇄를 뚫고 간신히 탈출합니다. 라레를 데려가려 했지만 라레는 부상병들을 위해 남겠다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라레는 남아 병사들을 돌보았고, 프랑스가 영국에 항복한 후에 본국으로 송환됩니다(1801년).

그 동안 나폴레옹은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통령(Consulate)이 되었고, 귀환한 라레는 근위부대의 수석 외과의사로 임명되어 나폴레옹의 신임을 계속 받습니다. 1804년에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하자, 라레는 황제 근위대의 수석 외과 의사로 임명됩니다. 고관대작이 되었지만 라레는 여전히 현장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는 일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숙적 영국을 고립시키려 유럽 각국에 대륙 봉쇄령을 내립니다. 오늘날 적성국가에 제재령을 내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요. 하지만 포르투갈이 영국을 믿고 동참하지 않자 1807년에 포르투갈 원정군을 보냅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이 영화는 부사코 전투에서 영-포 연합군에 대패하는 프랑스군대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전투가 막 끝나자, 쓰러진 병사들에게 재빠르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여전 의료의 선진국인 프랑스군이니 당연히 야전 군의관이라 기대했는데, 아니네요. 약탈자들입니다. 죽은 사람이건 숨이 붙은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병사들의 소지품을 약탈하고 옷이나 부츠를 벗겨내는, 전장의 재활용업자들, 하이에나들입니다. 라레가 있었다면 영화의 풍경도 바뀌었을 텐데… 날아다니는 앰뷸런스가 부상병들을 옮기는 장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웰링턴 장군은 방어선에서 프랑스군을 잘 막아냅니다. 프랑스의 포르투갈 침공은 5년을 끌다가 철군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후로 잘 나가던 프랑스의 앞날에도 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1812년에 나폴레옹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 원정길에 오릅니다. 그 동안 장군으로 진급한 라레 역시 수석 외과 의사로 종군합니다. 이듬 해에 독일과의 전쟁 중에  ‘군무 이탈을 목적으로 자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병사들이 무려 3,000명이나 적발되는 군기 사고가 발생합니다. 노발대발한 황제는 그들 중 48명을 뽑아 총살형을 집행해 군기를 세우려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자해를 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라레는 부상병들을 자세히 진찰하고, 의무기록을 살핍니다. 그들은 신병들로 전투 중 전열에 섰다가 후열에서 쏜 총탄을 맞아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병사들은 손 외에도 다른 상처도 있었으니까요. 병사들의 잘못이 아니라 일종의 과실치상이었습니다. 라레는 황제에게 병사들의 의무 기록을 증거로 제출해 누명을 벗겨주었습니다. 나폴레옹도 무척 기뻐했겠지요?

근대 야전 의학의 선구자 라레. ⓒ 위키백과

근대 야전 의학의 선구자 라레. ⓒ 위키백과

1814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됩니다. 라레는 따라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나폴레옹이 거절합니다. 이듬해에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 제국의 부활을 선포하고, 워털루에서 건곤일척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당연히 라레도 워털루로 갑니다. 26세부터 전장에 나섰던, 이제 쉰 살이 다 된 백전노장의 라레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가운데서 부상병들을 치료합니다. 영국군 사령관인 웰링턴 공작이 그의 모습을 발견했고, 경의를 표한 후 라레가 있는 방향으로는 사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워털루에서 프랑스는 대패하고 나폴레옹은 간신히 피신합니다. 하지만 전장 한가운데 있었던 라레는 프러시아군에 생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때 라레를 알아본 프러시아 군의관이 라레를 브뤼크너 원수(Marshal Blücher)에게 데려갑니다.  원수는 수년 전 자기 아들이 전장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 라레가 국적을 초월하여 인도주의 정신으로 아들을 치료해 살려준 것을 기억했기에 라레를 환대하고 석방합니다.

1821년, 나폴레옹은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두면서 라레에게 10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유산으로 남깁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훌륭한 남자!’라는 찬사도 남겼습니다. 나폴레옹과의 인연은 이렇게 끝났지만 라레는 여전히 군의관으로 일했고, 1842년에 역시 의사인 아들과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병을 얻었고 귀국 길에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근대 야전 의학의 선구자인 라레, 그 이름은 개선문에 새겨졌고, 동상은 프랑스 육군병원 발 데 그라스( Val-de-Grâce)에 서 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라레 상(賞)을 제정해 야전 의학 발전에 공헌한 이들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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