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6,2017

나노과학 천재 과학자를 기리다

고 신중훈 교수, KAIST에서 특별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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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10시 카이스트 개교 46주년 기념식이 열린 카이스트 대강당에 홍영은씨가 들어왔다. 홍 씨는 지난해 9월 30일 갑자기 교통사고로 남편 고 신중훈(1968~2016) 교수를 잃었다.

이날은 홍 씨가 남편을 대신해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하는 날이다.

우리나라 나노과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신중훈 카이스트 교수의 타계는 동료 교수들과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 큰 충격을 줬다. 신 교수는 하바드 대학을 거쳐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불과 27세에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된 뒤, 연구와 행정에서 엄청난 성과를 낸 나노과학의 개척자였다.

오토바이 타고 오다 지난해 갑자기 사망    

“남편이 아이처럼 너무나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았다”고 홍 씨는 회상했다. 평소 오토바이를 그렇게 타고 싶어 했지만, 아내의 만류에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신 교수는 마침내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다시 갔을 때인 40세때 오토바이 면허증을 따고 소원을 이뤘다. 홍 씨는 신 교수가 “날씨 좋은 봄 가을로 오토바이를 타곤 했다”고 말했다.

강성모 총장이 홍영은 씨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하고 있다.  ⓒ 심재율 / ScienceTimes

강성모 총장이 신 교수를 대신해서 홍영은 씨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하고 있다. ⓒ 심재율 / ScienceTimes

그러던 신 교수는 지난해 9월 30일 강원도에서 광학회 학술대회를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나와 불법 유턴하던 택시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했다.

미국에서 대학시절 만나 지난해 결혼 20주년을 맞은 홍 씨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홍 씨는 “겉은 멀쩡한데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시동은 켜지지만 액셀을 밟아도 나가지 않는 자동차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홍 씨는 며칠 전에도 꿈에 신 교수가 나와 “같이 레고를 하면서 놀았다”고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 그렇게 후배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 신 교수를 생각하면서 홍 씨는 신중훈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후배 교수들과 학생들을 돕기로 하고 우선 1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행사장에 나와 애써 웃어보이던 홍 씨는 굳은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은 뒤 내려왔다. 평소 봉사활동을 같이 벌이던 강성모 총장의 부인이 홍 씨를 와락 안아줬다. 홍 씨도 남몰래 울컥 했다.

홍 씨는 이날 오후에는 신 교수 추모 학회가 열리는 강원도 하이원 리조트로 갔다.

신 교수는 1989년 하바드대학 학사과정을 졸업하고 1994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6년 27세에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될 만큼 매우 빠르게 달려왔다.

신교수는 임용후 나노 및 첨단 과학분야에서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12년에는 과학저널 네이처에 몰포나비(Molphor) 연구내용이 게재됐다. 염료 없이도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 연구결과는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몰포 나비에서 염료를 추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 ⓒ 신중훈

몰포 나비에서 세로운 색깔의 원리를 발견했음 보여주는 사진 ⓒ 신중훈

2004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선정한 ‘올해의 젊은 과학자상’에 이어 2005년 ‘한국공학상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펠로우십 어워드’(2005), 대통령 표창(2006), 카이스트 공적상(2009), 카이스트 연구상(2011)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초대 학과장 맡아 나노과학 융합연구의 뿌리 마련    

그는 나노과학에 너무나 뚜렷한 성과를 남겨놓았다. 2008년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 (WCU World Class University) 연구책임자로 선정되어, 물리-화학-생명 기초과학 융합연구를 목표로 나노과학기술대학원(약칭 나노학과)을 설립했다. 초대 학과장으로 개성이 다른 학과의 다양한 요구를 성공적으로 조율하고 훌륭한 연구자와 해외두뇌를 유치했다.

해외학자 중 5명은 카이스트에 영구정착함으로써 WCU 사업단내 최고의 해외학자 유치 성과를 달성했다. 그 후 자립할 수 있는 융합 대학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젊은 교수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했다. 신중훈 교수는 WCU 사업 내내 최우수 평가를 받았으며, WCU 후속 프로그램인 BK21 PLUS 사업을 2013년에 성공적으로 유치해, 나노학과가 2014년 카이스트 학과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신중훈 교수 ⓒ 카이스트

고 신중훈 교수 ⓒ 카이스트

카이스트가 글로벌 대학으로 성장하려면 해외 우수 과학자를 많이 유치해야 한다. 강성모 총장 부인은 유치과학자가 쉽게 정착하도록 교원 부인들을 모아 봉사단체 ‘카이플러스’를 결성했다. 카이플라스 회장을 물려받은 홍 씨는 100여명의 교원 부인들이 향수병에 걸리지 않고 카이스트에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일로 신 교수를 도왔다.

김용현 카이스트 교수는 “신 교수는 젊은 교수들에게는 형처럼, 아버지처럼 울타리가 되어 주었으며, 연구 및 교육에 있어서는 학과장이자 멘토로서 젊지만 노련한 리더쉽을 발휘했다”고 회상하면서 “신 교수는 나노학과의 영원한 학과장으로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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