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주요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유기발광소자와 양자점 디스플레이 기술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소자 모두 극복해야 할 한계가 있어요. 유기 발광소자의 경우 수명신뢰성과 수분, 그리고 산소에 대한 취약성 개선이 필요합니다. 양자점의 경우는 높은 발광효율을 내기 위해 인체에 유해한 Cd계 물질을 사용해야 하죠."
국내 연구진이 기존 양자점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체 유해성이 없는 새로운 양자점 디스플레이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전석우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이 조용훈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유승협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흑연으로부터 고품질의 그래핀 양자점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세계 최초, 흑연으로부터의 개발
"그동안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 연구되면서 소재 안정성이 높은 것은 물론, 인체 유해성이 없는 디스플레이용 소재를 개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강조됐습니다. 이 시점에 저희 연구팀은 탄소로 만들어지고 화학적으로 안정한 물질인 그래핀 연구에 착안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흑연으로부터 개발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죠. 흑연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연필심에 쓰이는 덩어리죠. 연필심을 보면 알 수 있던 흑연은 그 자체로 발광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원자층으로 분리하면 그래핀이라는, 화학적으로 굉장히 안정한 소재가 나오게 돼요. 또 원자층의 그래핀을 10나노(n) 이하로 작게 만들면 발광소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래핀 자체가 밴드갭을 갖지 않고 원자층으로 나누고 또 작게 만드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결함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결함은 발광 효율을 낮추는 원인이 됩니다."
전석우 교수팀은 지난 4년간 그래핀의 결함을 최소화 해 그래핀을 박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더 나아가 10나노(n) 이하로 작게 만드는 원천기술도 개발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결과인 그래핀 양자점은 이러한 앞선 연구를 통해 제작된 것으로 지금까지 다른 연구 그룹에서 만든 어떠한 그래핀 양자점보다 발광효율이 우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핀 양자점이 실제로 발광에 크게 기여하는 그래핀 양자점 디스플레이 제작을 최초로 성공할 수 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저렴하고 안전한 흑연으로부터 고효율의 빛을 추출하는 안정된 발광체를 제작하는 데 성공한 것이죠."
앞서 언급한대로 전석우 교수팀은 그래핀의 원재료인 흑연에 염(salt)과 물만을 이용한 흑연층간 화합물을 합성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그래핀 양자점을 만들었다. 개발된 양자점은 지름이 5나노미터(nm) 정도로 크기가 매우 균일하면서도 양자 효율은 매우 높았다. 기존 양자점과 달리 납과 카드뮴 등 독성 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고,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인 흑연과 염, 물을 이용해서만 만들었기에 비용부담도 매우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많은 분들이 흑연으로부터 원하는 수준의 발광효율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흑연으로부터 원자층 한 층의 소재인 그래핀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처럼요. 기존 세계 많은 연구그룹이 흑연 산화를 통해 직경 10나노(n) 이하의 그래핀 양자점을 제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산화를 통해 그래핀 양자점을 제작하는 것은 힘들어했어요. 이러한 방법은 결함을 많이 생성시키기 때문에 전자와 정공이 주입 되더라도 빛으로 추출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결국 우리 연구 그룹이 다년간 연구하고 보유한 비산화 그래핀 제작 기술이 고품질의 그래핀 양자점 제작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세계 최초로 연구에 성공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전석우 교수에 따르면 기존의 발광체들은 복잡한 합성공정과 고가의 원료 소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또한 기존 양자점 소재는 카드뮴이나 납 같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해야 하고 양자점 표면의 결함들을 제어하기 위해 다층 보호 구조를 필요로 했다. 이로 인해 독성 문제가 한계로 지적됐던 것이다. 하지만 전 교수팀은 앞선 문제를 모두 극복하고 흑연으로부터 산화도를 조절해 값싸게 유기물과 무기물 경계에 있는 2차원 흑연 양자점을 만들었다.
밀도있는 연구환경 조성 필요해
연구팀은 이번 결과를 통해 그래핀 양자점의 발광 메커니즘을 규명했으며 제조된 그래핀 양자점을 통해 휴대폰 디스플레이의 최대 밝기보다 높은 1000 cd/m2(cd, 칸델라) 이상의 높은 휘도를 갖는 그래핀 양자점 LED를 개발해, 향후 상용화 가능성을 최초로 입증했다.
이에 전석우 교수는 “아직은 기존 LED의 발광효율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발광 특성은 향후 더욱 향상될 가능성이 많다”며 “특히 그래핀 양자점을 활용하면 종잇장처럼 얇은 디스플레이는 물론 커튼처럼 유연한 소재에도 원하는 정보가 표시되는 기술도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 교수가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그가 미(美) 컬럼비아 대학에서 포스닥시절을 지내며 관심을 둔 현상에서 비롯된다. 그는 "나노과학자로서 반도체 물질이 양자효과에 의해 밴드갭이 조절돼 다양한 파장의 빛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관심이 있었다"며 "포스닥시절 컬럼비아 대학에 양자점의 아버지인 루이스 브루스(Louis Brus) 교수가 계셨던 것도 관심의 이유가 된다"고 이야기 했다.
이어 그는 "과학적인 연구계기를 들자면 첫 번째로 밴드갭이 없고 산화가 쉬운 금속으로부터는 양자점을 만드는 게 어려운데 그래핀은 금속과 반도체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양자점을 만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며 "두 번째로는 대부분의 원자들이 3차원 구조를 가지는데 2차원 소재인 그래핀은 어떤 형태로 양자효과가 나타날 것인가도 과학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질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래핀 연구 초기에 산화그래핀에서 희미한 빛이 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며 재료공학자 관점에서는 결함을 제어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래핀에서 빛이 날 수 있다면 소재를 더욱 깊이 제어할 수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발광소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때문에 이번 연구를 진행하게 됐죠."
총 6년이 소요된 연구다. 그는 2008년 카이스트에 부임한 이후 비산화 그래핀 제작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래핀 양자점이 제작 가능하다는 것은 4년 전부터 확신이 들기 시작해 발광파장의 위치와 효율이 그래핀 양자점 산화도와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2년 전 쯤 새로운 비산화 그래핀 제작을 위한 수화물계 염을 테스트하다가 우연히 그래핀이 굉장히 작게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그래핀 양자점 디스플레이를 제작한다면 과학적으로, 또 산업적으로 큰 파급효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죠. 연구과정 중 어려웠던 점이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차분한 연구환경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죠. 그래핀이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전극이나 차세대 반도체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산업계와 정부 과제에서 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빠른 양산과 사용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빠른 결과의) 연구를 강조하다보니 소재로서 그래핀이 갖는 결함이나 원천적 소재 제작 연구를 밀도 있게 연구하기 다소 힘들었어요. 다른 것보다 이러한 점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그래핀이 세상에 빛을 본지 10년도 되지 않은 지금 아직도 그래핀의 기본 물성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많이 필요한 실정"이라며 "다행히 우리 연구에서는 운 좋게도 그래핀으로부터 빛을 뽑아낼 수 있었지만 이런 원천적인 연구들은 체계적이며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를 통해 결함을 낮추면 발광효율이 좋아지는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결함이 어떤 형태로 어떻게 배치될 때 가장 좋은 발광소재를 구현할 수 있는지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발광효율과 밴드갭 조절 등을 통해 더욱 좋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것이 현재 가장 집중해서 하고 있는 연구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9-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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