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호를 감지해 전기적인 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광검출기. 특정 빛만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저렴하고 간편한 광검출기가 개발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내 연구진이 나노선의 두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나노선은 두께에 따라 전기적·광학적 신호가 변하는 만큼 이번 연구를 통해 나노선을 활용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홍규 고려대 교수팀이 개발한 이 기술을 통해 원하는 색깔의 빛만 선별해 흡수하는 새로운 나노 광소자를 개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박홍규 고려대 교수와 찰스 리버(Charles Lieber)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주도한 이 연구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이자 나노분야의 최고 권위지인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 3월 10일자에 게재 됐다.
나노미터 두께를 갖는 머리카락 모양의 반도체 나노선은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크고 독특한 전기적·광학적 특성을 갖고 있기에 매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이용할 경우 나노레이저나 나노태양전지 같은 차세대 나노 광소자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나노선은 양자현상과 탁월한 결정성, 자가조립 등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는 소자입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기존의 공정, 벌크 물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로 평가를 받고 있죠. 특히 나노선의 특성은 두께에 달려 있어요. 때문에 나노선의 두께를 조절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나노선의 두께를 조절하고 하나의 나노선에서 다양한 물질과 구조적인 특성이 동시에 나타나도록 하는 일은 지금까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노선을 화학적으로 합성해야 했는데 그 합성과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죠. 저희 연구팀은 플라토 레일리의 불안정 원리를 이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플라토 레일리(Plateau와 Rayleigh) 불안정 원리는 표면 장력에 의해 얇은 1차원적 물기둥이 점차 갈라지면서, 이것들이 여러 개의 작은 0차원 물방울로 변하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연구팀은 해당 원리를 반도체 물질의 결정 성장과정에 적용, 균일한 지름을 갖는 반도체 나노선 위에 나노선의 축 방향으로 주기적인 껍질 구조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껍질을 성장시킬 때 낮은 압력에서 가스를 주입하면 표면에너지가 감소해 나노선의 축 방향으로 주기적인 껍질 구조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합성 조건에 따라 껍질의 종류뿐만 아니라 두께와 주기, 단면의 모양까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저희팀은 플라토 레일리 불안정 원리를 적용한 만큼, 이를 이용한 성장방식에 대해 ‘플라토 레일리 결정성장’ 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름이 균일한 실리콘 나노선을 합성하고 이 위에 껍질 구조를 재성장 시키는 거죠. 이 때 높은 압력과 온도의 상태에서 SiH4 가스를 주입하면 균일한 껍질 구조의 나노선이 합성됩니다. 하지만 껍질을 성장시킬 때 낮은 압력 하에서 SiH4 가스를 주입할 경우 표면에너지가 감소하면서 나노선의 축 방향으로 주기적인 껍질 구조가 합성돼요. 즉, 플라토 레일리 불안정 원리에서 여러 개의 작은 0차원 물방울이 생기는 것처럼 나노선 위에 여러 개의 작은 껍질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죠. ‘주기적 껍질 구조’를 갖는 나노선은 부피가 동일하다면, ‘균일한 껍질’을 갖는 나노선 구조에 비해 표면 에너지가 낮고 열역학적으로 더 안정적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노선 합성의 새 영역을 개척하다
나노구조를 합성할 때 표면장력이나 표면에너지를 낮추게끔 모양이 형성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박홍규 교수는 “물줄기가 작은 물방울들로 변하는 현상 또한 나노선의 합성에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시작했다”며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 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나노구조를 제작하고 이 나노구조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광학 현상을 규명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구조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빛과의 상호작용이 커지게 되는데, 이 경우 빛이 기존에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행동해요. 때문에 새로운 물리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이저 빛도 나노구조에서는 훨씬 더 강하게 증폭될 수 있는 거죠. 때문에 다양한 나노구조를 디자인하고 제작해서 어떤 빛을 어떻게 흡수하고 산란시키는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나노선의 경우 흡수되는 빛의 색깔이 두께에 의해 크게 변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껍질을 나노선에 도입하게 되면 매우 흥미로운 빛의 특성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 거죠.”
이번 연구는 ‘나노선 합성’ 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노선 합성이란 반도체나 금속 같은 다양한 물질을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시작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모양으로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렇게 화학적으로 합성된 나노선은 결함이 거의 없고 어떠한 물질로도 만들 수 있으며, 대량생산 또한 가능하기 때문에 차세대 반도체 물질로 각광을 받는다.
“이러한 나노선을 이용해 극미세 전자소자 혹은 광소자를 제작하게 되면 성능이 매우 좋아지게 될 뿐 아니라 단가 또한 매우 저렴해 집니다. 때문에 전세계 많은 연구 그룹에서 활발히, 또한 매우 경쟁적으로 연구 중에 있어요. 현재 나노선을 이용해 태양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꿔 줄 수 있는 나노선 태양전지, 레이저 빛을 발생시킬 수 있는 나노선 레이저, 산성도를 민감하게 측정할 수 있는 나노선 센서 등은 이미 개발된 상태입니다.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이러한 나노선 소자들의 성능을 더욱 개선할 수 있어요.”
약 2년에 걸쳐 진행된 연구다. 박 교수는 “다양한 모양의 나노선을 합성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새로운 나노선 구조의 광특성을 파악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연구 과정의 어려움을 회고했다. 이어 그는 “빛을 이용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으나 대부분 실패했고 마지막으로 나노선에서 나타나는 색깔별 빛의 산란 특성을 확인하고 계산 결과와 비교함으로써 독특한 광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거친 결과 이번 연구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학계 관계자들 역시 학술적 의미가 매우 큰 연구라는 데 입을 모은다. 이미 오랫동안 잘 알려진 플라토 레일리 불안정 원리의 깊은 이해를 통해 1차원 나노선 구조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결정 성장방식을 실험적으로 관찰했으며 이론적 모델을 통해 이 현상들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연구결과를 도출한 박홍규 교수. 그는 오랫동안 연구를 진행한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철학도 갖고 있었다. 그 핵심은 바로 ‘트렌드의 파악’ 이었다. 박 교수는 “나노분야는 그 특성상 트렌드 변화가 매우 빠르다”며 “6개월만 지나도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연구가 진행되는 게 현실”이라고 이야기 했다.
“본인이 하고 있는 기존의 연구를 고집하는 것보다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를 잘 쫓아갈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물리와 광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저희가 트렌드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말이죠. 이러한 자세로 저희 연구실은 계속해서 더 좋은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현재도 나노와 광학을 결합한 나노광학 분야에서 많은 융합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연구의 대부분은 바이오와 에너지 분야 연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저희는 태양전지 연구를 통해서 에너지 분야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바이오 분야 연구 또한 시작해 보고 싶어요. 나노광학과 바이오 분야가 결합된 인공 망막 혹은 인공 눈(eye) 등의 연구를 진행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5-04-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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