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8,2017

관광지로 변신한 운하의 비밀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42) 미디 운하

인쇄하기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 스크랩
FacebookTwitter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이끈 프랑수아 1세는 16세기 초에 이탈리아 예술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데려왔다. 그 이유 중 하나에는 가론 강과 오드 강을 연결해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운하를 만든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운하를 건설하게 되면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 해역을 3000㎞ 이상 우회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해적과 거친 파도로부터 안전하게 배를 운항할 수 있다. 때문에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려는 생각은 로마 시대의 네로 황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매우 오래 전부터 시도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세밀한 계획도를 내놓았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지역마다 해발고도가 달라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선 거대한 인공호수를 조성해 갑문에 용수를 공급해야 했던 것이다.

화물 운송로의 수명이 다한 이후 미디 운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신했다.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화물 운송로의 수명이 다한 이후 미디 운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신했다.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그 같은 난제는 약 140여 년이 흐른 후에야 해결됐다. 랑그도크 지방의 대지주였던 피에르 폴 리케가 기술적으로 그와 관련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 그는 마을의 물 공급 담당자 및 수력공학 기술자 등을 초빙해 운하의 제작에 필요한 물 공급 문제를 다양하게 조사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콜베르의 지지를 끌어냈으며, 1665년 전 구간에 걸쳐 수로의 건설을 허가하는 특허증을 발부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10월에는 운하의 착공을 발표하는 루이 14세의 포고가 내려졌다.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가 운하 건설에 관심을 보인 것은 군대의 이동이 쉬운 군사적 이점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착공 14년 만에 운하 개통

왕의 승낙이 내려지자 운하 건설에 부정적이었던 봉건 귀족들의 반대를 잠재우고 1667년 1월에 비로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해발고도가 각기 다르고 기복이 심한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다리, 수문, 터널, 수도교, 배수관, 수로 건설 등 수많은 대형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그중 가장 큰 프로젝트는 바로 몽타뉴누아르 주의 로도 강에 세운 생 페레올 댐이었다. 이 댐은 미디 운하의 무수한 갑문에 물을 공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갑문은 해발고도가 다른 지역을 관통하는 운하의 수위를 조정하는 구조물을 말한다.

즉, 배가 갑문 앞에 도착하면 입구가 열리고, 그 안으로 배가 들어가면 문을 닫아서 위쪽 수로의 물 높이와 같도록 물을 채우는 방식으로 한 단계씩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길이 241㎞의 미디 운하에는 이 같은 갑문이 65개가 있어 최고 높이 해발 190m의 지역을 통과할 수 있다.

운하 건설을 위해 가장 많을 때는 1만2000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부족한 남성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600명의 여성도 포함되었을 정도였다. 노동자들은 12개 부서로 나뉘었으며, 현장 주임 아래 50명으로 이루어진 팀으로 다시 나뉘었다.

애초 책정한 공사비는 336만 리브르였으나 최종 공사비는 원래 예산보다 약 5배나 불어난 1500만 리브르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 탓이다. 공사비의 충당은 왕실 재무부, 랑그도크 지방의 자금, 그리고 운하 건설을 최초로 주장한 폴 리케가 담당했다. 이에 따라 완공된 운하의 관리 및 수입의 사용권은 폴 리케와 그의 승계자에게 할당되었다.

미디 운하는 착수한 지 14년 만인 1681년 5월에 수로가 개통됐다. 그 후로도 미디 운하는 수해 등의 피해를 입어 계속 개수되었다. 운하가 개통되자 그 지역의 특산물인 와인과 포도, 곡물 운송이 단 4일 만에 가능해졌다. 이후 운하 주변의 농산물 유통이 왕성해져서 랑그도크 지방의 와인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산업혁명의 기반 마련에 큰 역할

근대 과학기술사회로 이어지는 무렵에 건설된 미디 운하는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운하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대량 수송 루트로서, 근대 과학 기술이 낳은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19세기에는 톨루주에서 대서양 항구도시인 보르도를 연결하는 가론 운하가 완공되어 지중해에서 남프랑스를 관통해 대서양으로 직접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19세기에 미디 운하를 따라 철도 및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운하는 점점 화물 수송로로서의 기능을 잃어갔다. 이후 물동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결국 1989년에는 화물 운송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원래 운하 건설은 자연을 파괴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폴 리케는 운하가 지나가는 주변 경관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도록 신경을 썼으며, 새로 건설되는 대형 구조물에도 각기 예술성을 부여했다.

그의 이 같은 미학적 배려는 화물 운송로의 수명이 다한 이후 미디 운하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디 운하의 양옆에는 사람과 말이 선박을 끌기 위한 길을 만들어놓았는데, 이 길이 오늘날은 운치 있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되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뱃길은 요트들이 운항하는 유명 관광 코스가 되었다.

또한 운하 양옆의 길에는 4만5000그루 이상의 플라타너스와 삼나무 등이 식재되었다. 낙엽이 운하에 가라앉아 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뿌리가 운하의 제방을 튼튼히 하기 위한 설계였다. 이 나무들로 인해 미디 운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단풍 여행 버킷리스트로도 꼽힌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