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할까? 라는 정말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과학자의 생각법’(Discovering)이라는 책을 썼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을 어떻게 육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조언이 심금을 울린다.
760쪽에 이르는 이 두꺼운 책에는 수많은 과학자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Robert Root-Bernstein 1953~)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전기를 찾아 읽고 조사했다.
아마도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과학자를 조사했는지는 12쪽에 걸쳐 나열한 과학자 리스트에서 드러난다. ‘뛰어난 과학자와 발명가 중에서 예술가적 성향을 가진 과학자 목록’이다.
19세기 이후 과학자를 주로 다뤘는데 모두 381명이 올라와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수 백 권의 문헌을 뒤졌을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약간 골치가 아픈 과학자들 사이의 내밀한 대화와 습관 등이 담겨있다. 그래도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바로 이 리스트이다.
창의적인 과학자는 어린아이와 같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번역했다. 갈릴레오는 10대에 미술가가 되려고 했으며, 일생 시를 썼다. 케플러는 음악가이자 작곡가였고, 파스퇴르는 재능있는 어린 화가였다. 윌리엄 브래그는 그림을 그리고,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슈뢰딩거가 태피스트리를 짠다는 사실은 가족만이 알았다.
과학자들의 그림과 조각은 화랑에 걸렸고, 그들이 쓴 소설은 사회비판에 미스터리까지 다양했다. 재즈음악가였으며,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연극에 출연했다.
저자는 뛰어난 과학자의 특징과 창의성의 근원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가장 창의적인 과학자는 이 우주에 관해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품은 사람이다.” 예술과 과학의 공통점이 있다면 순수한 마음 없이는 안된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자들도 많고 이공계 대학이 넘치는 시대에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과학에 대한 과학’ ‘과학자에 대한 과학’이다. 과학자에 대한 지원은 어때야 하는지, 연구기관에 대한 명성과 실제 연구결과는 일치하는지 등 과학생태계 연구가 관심을 끈다.
이 책은 1875~1890년 사이 유럽의 물리화학 연구중심지와 실제로 물리화학이 발전한 곳을 표시한 지도를 한 장 실었다.
당시 중심지는 본 베를린 라이프치히 하이델베르크 취리히 파리였다. 그러나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그르노블 툴루즈 인스부르크 암스테르담 리버풀 리가 등 주변부에서 태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꺼운 책에서 창의적인 과학자를 육성하는 비법은 특히 눈에 띈다. 과학적 방법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일한 진리라는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합의’가 아니다. 가능한 한 많은 방식으로 자연을 기술하는 것이다. ‘상보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에 집착하는 행동은 발전에 방해가 된다.
획일적 교육과정으로 가르치지 말고 과학자가 되기 위한 귀찮은 과정, 시험, 업적에 매몰되지 않으며 교육과정을 체계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길을 따르면 새로운 과학자는 나머지 모든 과학자와 별 다를 바 없이 훈련받아 다양성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심화 경향’은 과학의 급속한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라고 주장한다. 편견과 구분되기 어려운 사상으로 전락한다. 연구와 사고유형이 처참할 정도로 획일적이다.
이런 국가는 많은 과학자를 배출했지만, 혁신적인 과학자는 많지 않았다. 과학은 조립라인처럼 조직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정부와 대학과 연구소에 너무나 필요한 조언이다. 국내 연구자들이 하는 발언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경험과 논증과 토론을 통해서 나온 권위있는 학자의 확신있는 말이어서 무게감이 다르다.
저자는 ‘연구비를 지급하는 단일 원천, 다시 말해 정부에만 의존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연구비 지급결정이 관료적이라면 독특한 과학자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재정지원 기반을 정부 지방 민간 기부 벤처기업 등 가능한 한 확장하고,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중심과학기관’에서 연구하는 사람과 ‘주변기관’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를 동등하게 지원하고, ‘유행하는 연구’와 함께 ‘인기없는 주제’에도 투자해야 한다.
서로 다르게 훈련받은 수많은 연구자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어야지 성공만을 계획해서는 안 된다.
과학은 변화하므로 조직화 관료화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과학은 이래야 하는가? 과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창조력이며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조직화될 수 없으며 오로지 발전하든지 발전하지 못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그가 보기에 이미 자리를 잡은 현재의 과학관련 기관들은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 까지 기다리다가 침체할 것이다.’
이를 탈피하는 방법 중 하나는 괴짜를 기르는 것이다. ‘인공적 고립’을 만들어주고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상상력이 없는 동료나 관료들의 공격에서 보호해서 번영할 수 있든 조직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리고 ‘성공하는 소수’를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가 이제는 과학자를 연구하는 새로운 ‘과학에 대한 과학’을 고안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질문은 또 생긴다. 당신이 주변부에 있는지, 중심부에 있는지 어떻게 판단할까?
학회에 제출하기 위한 초록양식을 받았는데 250가지로 나뉜 세부항목에 나의 분야를 기술하는 단 하나의 항목도 찾지 못했을 때, ‘사이언스’에 논문을 보냈는데 심사해줄 사람을 찾아도 없을 때, 연구하는 주제가 NIH나 과학재단이 관리하는 연구비신청서에 없을 때 등이다.
생물학자이면서 과학사학자인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이 1959년에 한 발언이 책 끝 부분에 실려 있다.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 자유로운 학자는 사라지고 있으니 최상의 창조성을 발휘하기에 필요한 독립성과 무책임성이라는 조건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일까. 숨통이 트이는 구석도 그 후에 조금씩 나타났다. 저자가 받은 맥아더상도 그 중 하나이다. 1981년에 처음 주기 시작한 맥아더상(MacArthur Fellowship)은 천재상(Genius Grant)라고 하는데, 매년 어떤 분야이든지 특출나게 독창성과 창조성을 보여준 개인 20~30명에게 5년에 걸쳐 625,000달러씩 준다.
지난 해 까지 모두 942명이 받았다. 생물학자이면서 과학사학자인 저자는 첫 해 수상자에 뽑혔다. ‘진짜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 상’이 바로 이 맥아더상이다.
‘존 & 캐서린 맥아더 재단’ (John D. an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이 미국시민이거나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하는지, 누가 심사하는지는 모두 비밀이다. 수상자 역시 자신이 후보에 올랐는지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는다는 사실만 알려지고 있다.
'과학자의 생각법'은 과학이 직업인 과학기술자, 과학행정가, 주요 연구기관의 운영책임자들이 꼭 읽어야 할 목록에 넣을만하다.
- 심재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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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8-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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