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 대신 정보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이 더 포함된 단어인 ICT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만드느냐가 중요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8일, 고등과학원 초학제 심포지엄에서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인 정지훈 교수가 ‘과학기술 패러다임 변화와 융합적 상상력’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인터넷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개방, 참여, 협업이라는 문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현상이 아닌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교수는 “인터넷이 동떨어지고 분리된 것으로 존재하기보다 다양한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 분야들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며 “무엇보다 인터넷과 스마트 기술이라는 온라인 도구로 무장하고 연결된 이용자들의 주도성이 강화되면서 십시일반 힘을 모아 혁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협업 과학, 사이언스 2.0
그렇다면 과학 분야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정확히 말하면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가장 보수적인 부분이라고 여기는 논문 분야에서조차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시스템은 과학논문 검토와 발표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평가조차도 폐쇄적이었다. 그러나 코넬대학의 폴 진스파크는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1991년 물리학자들의 디지털 논문원고 발표를 위한 공개서버인 ‘악시브(arXiv)’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론 물리학의 발표 전 원고를 공유하기 위해 이용됐다. 하지만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여 컴퓨터과학, 천문학, 수학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물리학 분야의 전체 연구논문의 절반 이상이 이 사이트에 게시되고 있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서 실행하는 LHC(Large Hadron Collider) 실험도 하나의 예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입자가속기를 이용하는 이 실험은 매년 페타바이트 단위의 데이터가 나오는데, 전 세계의 수 명의 물리학자들이 하나의 팀처럼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의 데이터를 올리면 바로바로 입수하여 자신들의 실험과 분석에 적용하는 것은 물론 코멘트를 달고 있다.
정 교수는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실시간으로 검증하고 피드백을 하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진행이 더 빨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웹 2.0의 철학에 맞춘 새로운 협업 과학인 사이언스 2.0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의학 분야에서도 온라인 전문저널 과학공중도서관인 플러스 원(PLoS(Public Library of Science) One)이 운영되고 있다. PLoS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며, 시간에 따른 양상, 리뷰 추천자들의 별표를 이용한 평가, 인용 수 등이 "매트릭스(Metrics)"라는 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쉽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발행이 가능하게 되어, 직접적으로 플러스 원을 팔로잉 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사이트를 만든 피터 빈필드(Peter Binfield)는 “앞으로 5년 내에 대부분의 저널들이 온라인으로만 운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교수도 “이미 많은 수의 새로운 과학 저널들이 아예 온라인으로만 운영하는 곳이 생겨났다”며 “그중에는 좋은 평판을 받으며 점점 성장하며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 메이저 과학출판사들도 인쇄 저널의 비중을 줄이는 것은 물론 일부 저널에서는 온라인으로만 운영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실험의 대중화, DIY 과학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안에 벌어진 사회적문화적 상징은 아주 다릅니다. 클래식은 소수 왕과 귀족을 위한 음악이었지만 대중음악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음악입니다. 대중음악이 생긴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악기를 접할 수 있었고 음악이 주는 풍요로운 생각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분명 대중음악 시대 이후의 삶은 클래식 시대의 삶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 교수는 “과학도 마찬가지”라며 “특히 젊은 친구들을 중심으로 소수 과학자들에 의한 과학이 아닌 대중과학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시도가 점점 많이 눈에 띄고 있다”고 지적했다.
'DIY 생물학자'라는 운동을 이끌고 있는 28세의 젊은 생명과학자인 조세프 잭슨(Joseph Jackson)이 대표적 인물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지역사회에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생명과학 연구실이 있는데, 조세프 잭슨이 공동 창업한 ‘바이오큐리어스(BioCurious)’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오픈 사이언스 서밋( Open Science Summit)을 조직해서 'DIY 과학‘ 철학을 널리 퍼뜨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캐덜 가베이(Cathal Garvey)라는 청년 역시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DIY 운동이 나타나면서 집에서 세균을 배양하고, DNA를 조작하는 등의 실험이 가능해졌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조금씩 보태는 것만 아니라 커뮤니티를 만들어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세간의 관심을 받은 사람은 캐트리오나(Katriona Guthrie-Honea)라는 16세의 시애틀 소녀이다. 15세 때 독학으로 유전자 바이오센서 분자모델을 만들었던 이 천재소녀는 2012년 NWABR 바이오테크 엑스포에서 대상을 수상하는데, 그는 더 연구를 진행시키고 싶었지만 나이가 연구진행의 장애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처럼 과학연구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과학연구를 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연구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지역사회 생명과학 연구실인 시애틀 최초의 바이오테크 해커스페이스(biotech hackerspace)는 이렇게 생겨나게 됐다.
정 교수는 “개방형 과학은 시대적 흐름”이라면서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해커스페이스처럼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에서 역할을 같이 수행하다 보면 앞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혁신과 융합적 발견․발명이 더 많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연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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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7-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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