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0,2017

과학과 사회운동의 사이에서

존 벡위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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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자가 생산적인 과학 경력을 쌓아 가면서도 동시에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활동가가 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분열된 개성을 지니고 과학을 시작했다. 과학 바깥의 사상 세계는 나를 매혹시켰지만, 과학자 공동체 내부의 세계로부터는 너무나 동떨어진 듯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 있어 두 개의 세계는 점차 하나로 합쳐졌다. 나의 정치 참여는 과학에서의 생활과 융합되었다. 과학의 철학, 역사, 사회학에 관해 읽은 책들은 나 자신의 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과학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그 놀랍도록 인간적인 활동에 대해 숙고해 보는 법을 배웠다.”1 . [존 벡위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의 수준은 해당 사회의 과학자가 처한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해당 사회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논의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필수적 요소가 되어야 한다.

각 사회의 과학자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조건은 모두 다르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들을 구조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과학자의 윤리적 각성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안이한 태도로는 과학도 사회도 구제할 수 없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자들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강요하기 전에, 과연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그리고 과학자는 어떤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는지의 문제가 먼저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과학과 과학자의 정체성이 어떤 상황인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보다 먼저 과학자들이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서구의 사례들을 들춰보아야 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만 황우석 사건,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건 등을 거치며 화두가 되어버린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가 한국적 맥락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과학자가 된다는 것

얼마전 유전학자이면서도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들에 깊이 관여해 온 존 벡위드의 자서전 격인 책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가 번역되었다.3 이 책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보자. ‘일류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활동가가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벡위드의 동료였던 클레멘트 마커트는 그러한 일이 불가능하다는 “의식적인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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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다른 분야들과는 다르게 학자들이 각 사회에서 가지는 발언권의 수준은 해당 학자가 그가 속한 학계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는지의 여부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전공과 아무런 상관없는 과학정책에 대한 한 과학자의 발언이 갖는 무게는, 그 과학자가 과학계에서 얼마나 인정받는지의 여부로 판별되곤 한다.

과학자의 학문적 권위는 빈번하게 과학자의 사회적 권위로 전이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통념은, 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지녔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의 발언을 경청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과 같은 딜레마가 발생한다. “과학자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도 발언권을 가질 수 없는가?” 벡위드는 이러한 딜레마를 평생 몸으로 체험해 온 얼마 되지 않는 과학자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경험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벡위드의 과학자로서의 경력이다. 벡위드는 분자생물학이 막 성장하던 당시에 유전학자로서 경력을 시작했고, 하버드에서 제임스 왓슨에게 미생물학을, 그리고 이후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로 건너가 프랑수아 자콥과 함께 연구할 기회를 가졌다. 다시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시드니 브레너와 함께 연구했고, 그 곳에서 프랜시스 크릭, 막스 페루츠, 존 켄트루, 프레드 생어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로부터 지적인 영감을 받았다. 그의 주변은 언제나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 속에서 ‘좋은 과학자’로 간주되는 이들로 넘쳐났다.

과학자가 사회적 활동가로 사는 일

과학자가 사회적 활동가로 살면서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어떻게 파악하는가는 중요한 일이다. 벡위드는 과학자로 살면서 동시에 활동가로 사는 힘든 결정을 내렸지만, 벡위드의 동료였던 프랑수아 윌리엄스는 과학을 버려야만 했다. “사실 나는 과학이 사람들에게 이로움보다 몇 곱절이나 많은 해를 끼친다고 확신하게 되었네. 나를 비롯한 소수의 과학자들이 이런 악용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지 못했어. 내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과학을 그만두는 것밖에 없었네. 그렇게 하면 최소한, 과학의 해로운 사회적 결과에 기여하지는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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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위드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던 동료 짐 샤피로 또한 과학계를 떠났다. “내가 과학계를 떠나려는 이유는 이 나라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과학이 착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실험실에서의 연구를 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지금 내가 상상하기로 바람직한 유일한 삶의 방식은 현 정치 제도에 도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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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위드 스스로 회고하듯이, 그의 정치적 성향은 뒤늦게 형성되었다. 프랑스와 케임브릿지, 그리고 하버드에서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얻은 개인적 경험이 큰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벡위드가 유명해진 기자회견 당시까지도 그의 사회에 대한 사고는 확고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벡위드는 과학자로서의 확고한 정체성 속에서 사회적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과학적 작업에 관한 기자회견으로 사회적 활동가의 경력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먼저 과학자였고,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서야 사회적 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벡위드가 과학자로 남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의 친구 프랑수아는 언젠가 벡위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과학에서의 사회적 쟁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해 온 과학자들이 사회적 피해를 예방하는 데 성공을 거둔 적이 있는가?” 프랑수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과학자라는 직업을 벗어 던졌다. 벡위드는 처음엔 프랑수아의 선택이 부러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과학에 남기로 했던 내 선택에 만족한다”라고 회고했다.

사회적 행동주의와 과학 사이에서 고민하던 당시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별로 특출하지도 않은 논문을 읽으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한다. “나는 과학을 사랑해”라는 벡위드의 혼잣말과 과학자로서 사회적 활동을 함께 해나가면서 “과학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이 그에게 사회활동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과학의 문화적 전통이 필요한 한국 과학

우리는 존 벡위드라는 과학활동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그의 동료, 프랑수아 윌리엄스와 짐 샤피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과학자가 과학자로 성공할 수 없다면, 그가 얼마나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했던 간에, 사회는 그를 쉽게 잊는다. 이런 얄궂은 사회 속에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윤리의 문제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벡위드처럼 일류과학자이면서 사회활동가이기도 한 과학자를 단 한명도 갖고 있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선결조건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 보야야 한다. 과학사회학자들은 그 이유를 과학자들의 윤리적 각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필자는 그것이 한국사회의 과학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필자는 과학자들의 윤리적 각성을 요구하기보다, 과학의 문화적 전통이 한국의 과학자 사회에 이식될 수 있는 조건들을 탐색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벡위드의 책이 주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과학자가 가장 성공적으로 사회적 활동에 나설 수 있는 영역은 그의 과학적 경험과 사회적 요구가 맞닿아 있는 그런 중첩된 공간이다. 그렇지 않을 때조차, 과학자로서의 그의 직업적 정체성은 사회적 활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가 정치인이 되던, 행정가가 되던 간에, 성공적인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는 과학자라는 개인의 철저한 정체성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의 필요조건은 해당 사회가 과학자를 대하는 태도와 해당 사회의 과학자들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과학자로서의 직업적 정체성이 갖추어진 사회, 그런 사회에서야 과학자는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사회는 그러한 사회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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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사회활동가가 될수 있는 사회의 조건

최근의 한국사회에서 의사나 변호사로 출발해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떤 이는 의사에서 경제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의사보다는 IT전문가로 더 유명하며, 어떤 이는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의사들은 이처럼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과학자들은 왜 그렇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어떤 종류의 대답이 가능할까.

여러 종류의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의사나 변호사와 과학자가 한국 사회에서 가진 사회적 지위를 통해 답을 추적해 볼 수 있다. 각 집단이 한국 사회에서 점유하는 경제적/정치적 조건들 속에서 그들의 사회적 활동지표가 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사로서 사회활동에 참여할 경우의 사회적 보장의 정도와, 과학자로서의 그것이 비교될 수 있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 사회에서 한 직업군이 점유하는 경제적 지위는 해당 직업군의 사회적 활동과 무관할 수 없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의사 혹은 변호사이기 때문에 보다 쉽게 사회활동가가 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한국사회에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나 변호사의 사회적 활동은 그들의 직업적 안정성 속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회활동을 하다가 언제든 의사나 변호사로 경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비를 국가에 의지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경제적 지위 외에도, 한국사회에서 의사나 변호사와 과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판이하게 다르다. 이는 당신의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될 수 있다.

해당 사회가 과학자를 인식하는 방식이 과학자들의 사회적 활동의 정도를 결정한다. 벡위드가 과학자로서 사회활동에 나서던 20세기 중반의 미국은 인류의 역사를 통털어 가장 많은 자금이 과학연구비로 집중되던 역사적 공간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과학자라는 직업군은 선망받던 직종이었으며, 사회적 인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벡위드의 사회적 활동을 그의 개인적 윤리나 경험으로만 환원시킬 수 없다.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많은 과학자이자 사회활동가였던 동료들의 존재가 이를 반증한다. 과학자의 사회적 지위가 존중되던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과학자들은 스스로 사회 속으로 뛰어들었다. 미국이 20세기 중반에서야 획득한 그 사회적 조건은 이미 19세기의 유럽에 형성되어 있었다. 정확히 그 무렵에, 유럽의 과학자들은 이미 열렬한 사회적 활동가였고 또한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벡위드의 경험으로 돌아와보면, 우리는 그가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깨우치던 당시 프랑스와 영국에서 그를 거쳐갔던 위대한 거인들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사회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갈등하지 않던 당시의 유럽적 전통 속에서 벡위드의 정체성도 형성되었다. 과학이 단순한 대학내에서의 활동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먼저 깨달았던 문화적 전통 속에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발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벡위드의 예가 보여주는 것은, 과학자의 사회참여가 가능하기 위해 요구되는 사회적 조건들의 중요성이다. 그러한 사회는 과학을 협소하게 규정하지 않으며, 또한 과학자를 그렇게 규정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 과학자들은 곧 지식인이다. 그런 사회에서 지식인의 범위는 결코 협소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벡위드라는 인물은 유럽과 미국을 잇는 과학의 문화적 전통이 투영된 결과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류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활동가인 과학자를 지니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과학자의 사회적 활동이 서구 사회에서 활발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과 그들의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에서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조건은 어떤 상태인가? 한국 과학자 사회의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떤 수준인가?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된 문화적/역사적 경로는 무엇인가? 과학자의 사회적 활동이 과학자로서의 정체성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과학자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한국사회에 그런 조건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형성중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19세기와 20세기로 여행을 떠날 차례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자의 기준과는 상당히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1. 존 벡위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그린비, 2009).
2. 그런 의미에서 ‘두 개의 과학자 헌장’을 다루었다. 과학자연맹의 헌장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
   임을 위해 해당 사회의 과학자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중요시했고, 한국의 헌장은 그러한 
   사회적 조건보다 윤리를 중요시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으리라 생각한다.
3. 벡위드존,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그린비, 2009).
4. 위 책, 123쪽.
5. 위 책 31쪽.
6. 위 책 92쪽.
7. 아마도 과학사회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왜 한국의 과학자들은 벡위드처럼 되
   지 않는가?” 필자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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