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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객원기자
2014-07-09

고른 열처리, 철강 질이 달라진다? [인터뷰] 이정호 기계연 극한기계연구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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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기초가 되는 철강산업. 자동차와 조선 등 국내 국가경쟁력을 큰 폭으로 이끌어온 철강산업은 여전히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지금이야 바이오와 나노 산업 등에 밀려 예전만큼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국가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철강산업은 지속적으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

철강사의 대표적 제품을 꼽자면 후판과 강판, 선재와 냉열강판 등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후판은 두께 6 밀리미터(㎜) 이상의 두꺼운 철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선박이나 건설용 철강재에 주로 사용된다.

후판을 제작할 때 중요하게 언급되는 과정 중 하나가 냉각과정이다. 잘 식힐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철강의 특성상 열처리된 철강을 어떻게 냉각시키느냐는 철강의 질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한 것이다.

타이타닉 호, 고급강재로 만들어졌다면

이정호 기계연 극한기계연구부 박사 ⓒ 황정은
이정호 기계연 극한기계연구부 박사 ⓒ 황정은

국내 연구진이 고온의 철강제품과 강재의 급속냉각(quenching) 열처리 과정에서 균일한 냉각을 이용, 제품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정호 한국기계연구원 극한기계연구본부 열공정극한기술연구실 박사팀이 자연적인 비등(끓음) 현상을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극한비등 급속 냉각제어' 원천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연구팀은 철강제품과 강재의 급속냉각 열처리 공정에서 냉각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균일하게 냉각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극한비등 냉각제어' 기술이란 자연계의 비등(끓음) 현상에서 핵비등 영역을 인위적으로 지연·확장시켜 강재의 급속냉각이 핵비등 영역에서만 발생하도록 한 기술이다. 핵비등 영역에서 냉각이 이뤄지면 철강제품과 강재의 냉각성능이 높아지고, 그러면서도 철강 전체적으로 냉각이 균일하게 진행돼 제품 형상(形象)이나 기계적 성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냉각을 적절하게 잘 해주면 철강의 조직 자체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판재의 기계적 성질을 높일 수 있는 거죠. 일례로 타이타닉 호 사건을 잘 아시죠? 사고가 발생한 이유를 언급하자면 선박을 이루는 철강의 단단함을 들 수 있어요. 당시에는 고급강재가 없었거든요. 극지방을 지나가면서 외부로부터 바위나 얼음덩어리의 충격이 가해졌을 때 고급강재였다면 그 충격을 버틸 수 있었을 겁니다. 저온에서 충격이 와도 판재가 찢어지지 않는 거죠. 하지만 예전에는 큰 배를 건조해도 저온에서 강재가 버틸 힘이 없었어요. 때문에 타이타닉 호가 그런 사고를 맞게 된 거죠. 즉, 항해의 문제가 아니라 선박재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셈이죠. 이런 것만 보더라도 철강의 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열처리 과정에서 급속냉각이 매우 중요하고요."

이정호 박사팀이 개발한 극한비등 냉각제어기술은 앞서도 언급했든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비등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절한 결과다. 이를 쉽게 이해하려면 고온에 냉각수가 닿는 현상을 상상하면 된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일 때 100도가 넘어가면 기포가 발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비등(끓음) 현상으로 여기서 온도가 더 높아지면 열이 더욱 많이 전달되다가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끓는 표면과 물 사이에 얇은 증기막이 생성된다. 이 막은 물이 직접적으로 뜨거운 표면에 닿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저희 연구팀이 개발한 것은 고온강재가 저온의 물질과 만날 때, 그 즉시 증기막이 생기는 현상을 막는 기술입니다. 즉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인위적으로 거스르는 연구를 한 거죠. '극한비등' 이라는 용어도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저희팀이 이번 연구를 하면서 새롭게 만든 말이에요."

이정호 박사팀의 연구를 이용하게 되면 기존에 사용하던 냉각기술의 한계를 현저히 극복할 수 있다. 냉각의 정도도 두 배 정도 높일 수 있으며 냉각의 분포 역시 고르게 진행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해당 연구결과는 후판 뿐 아니라 타이어 코드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선재와 냉열강판, 그리고 전자제품 등에 사용되는 강판 등에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금속재료를 연구하고 있지만 이번 연구는 단순히 철강 플랜트에 적용되는 것을 넘어 금형산업에 전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금형 사업 규모가 7조원에 육박합니다. 수출은 2조원에 달하고 국내 생산만 7조원이죠. 뿌리산업인 해당 금형산업은 대부분 5~10인 이내의 직원을 둔 소규모 사업장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한 마디로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거죠. 기업이 영세하기 때문에 금속을 냉각하는 방법도 모두 제각각이에요. 한 마디로 엔지니어의 '감'에 의존한 거죠. 하지만 금형의 열처리는 조금만 기준을 제시해주면 보다 좋은 재질을 만들 수 있어요. 10회 사용할 것을 20회, 많게는 30회까지 사용할 수 있죠."

이정호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제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금형 산업을 보다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비췄다. 궁극적으로 제조업 발전에 기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기업들은 워낙 영세해서 열처리 할 때 시작과 끝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중간과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저 냉각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중간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금속 조직이 바뀌기 때문에 이를 과학적 방법으로 개발해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과학적 방법으로 히든챔피언 중소기업 탄생하길

다양한 형태의 극한비등 구현 노즐에 의한 냉각제어 예 ⓒ 기계연
다양한 형태의 극한비등 구현 노즐에 의한 냉각제어 예 ⓒ 기계연

개발한 기술을 이야기 하면서 이정호 박사는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을 자주 언급했다. 결국 한 나라의 경쟁력을 이루는 데는 튼튼한 중소기업의 힘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실 현재 금형산업은 대기업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다. 현재 국가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과학기술분야는 나노와 바이오에 한정돼 있어 금속재료와 관련된 산업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속산업 분야의 작업 환경이 더욱 열악해 지고 있는 셈이다. 이정호 박사는 "결국 철강과 금속분야는 계속해서 끌고 나가야 한다"며 "특히 영세한 열처리 분야가 더욱 체계적으로 구비될 필요가 있다. 현재 대부분 열처리 설비는 해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업들이 영세하다보니 해외에서 좋은 제품을 구매하기보다 중고제품을 사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금속 제작 환경이 계속 열악해진다면 국내 국가경쟁력을 신장하는 데도 어려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영세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계연구원 같은 출연연에서 연구역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분들이 더욱 쉽고 체계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현재 후판 설비는 100%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어요. 일본 같은 경우 냉각기술 수준이 매우 높지만 해외수출은 하지 않아요. 기술 유출을 염두에 둔 거죠. 논문 발표도 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결국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은 유럽의 회사 한 두 군데에 불과합니다. 이럴 때 국내 기술력을 더욱 높여야겠죠."

이정호 박사팀이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철강 프레임의 수명을 높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는 생산성 증가로 연결되고 결국 국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연구는 국내에서 시도조차 없었습니다. 2000년 이후 국내 학문체계가 나노(nano) 혹은 마이크로 등 작은 세계에 관심이 몰리면서 금속 열처리 분야에는 이렇다 할 지원이 없었죠.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 재료공학 분야에서 철강을 연구하는 교수님조차도 몇 분 안남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금속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매우 중요해요. 철강산업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으로 오를 수 있던 근간의 힘이에요. 철강을 산업의 씨, 혹은 쌀이라고 명명하잖아요. 이젠 원천기술이 필요합니다. 모방기술은 딱 90년대까지였어요. 그 이후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철강재를 만들어도 세계 최고의 강도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양적으로 승부하려면 중국 등 후발주자 기업에 금세 따라잡힐 것입니다."

현재의 필요성을 느껴 진행한 연구였다. 물론 그 과정 가운데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특히 금속 열처리 연구는 고온을 다루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확한 데이터를 얻는 게 어려웠다. 급냉 실험을 위해서는 판재를 1000 도까지 가열해야 하는데 가열 후 고온에서 냉각되는 정도를 측정할 때 정확한 값을 얻는 게 쉽지 않았다. 온도를 측정하려면 온도센서를 판재의 정확한 위치에 설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많은 연구들이 신빙성이 떨어진 이유 역시 측정오차가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 진해했습니다. 급속냉각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이 전무하다는 생각에 연구를 멈출 수 없었어요. 국내에서 제대로 된 냉각기술이 있으면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겠다 싶었죠. 철강 뿐 아니라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냉각에도 사용될 수 있거든요."

이를 위해 이정호 박사는 앞으로 냉각기술을 계속 연구할 계획이라고 이야기 했다. 물론 최근 각광받고 있는 타 연구에 비해 새롭고 참신한 분야는 아니지만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계속 알리기 위해서라도 후속 연구에 매진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였다.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국내에 많지 않아요. 젊은 친구들이 금속 철강 분야에 많이 유입되기를 바랍니다. 중공업 혹은 플랜트 등의 산업은 정통산업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분야입니다. 똑똑한 친구들이 이 분야에 많이 종사한다면 결국 모두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7-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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