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5,2017

‘거위의 아빠’에게 쏟아진 비난

노벨상 오디세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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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A.I.’에서 미래의 인간들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의 온갖 봉사를 받는다. 그런데 감정을 가진 최초의 인조인간 데이비드가 만들어져 스윈튼 부부의 집에 입양된다.

인간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된 최초의 로봇인 데이비드를 작동시키기 위해선 한 가지 주의사항을 지켜야 한다. 바로 ‘각인 절차’다. 즉, 이 방법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을 활성화시킨 인간에게 데이비드는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A.I.’에서의 각인 절차는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발견한 ‘각인’ 현상과 똑같다. 거위나 기러기 같은 새들은 알에서 깨자마자 처음 본 상대를 어미로 여기고 따라다니는데, 그것이 바로 각인 현상이다. 각인 현상은 새를 통해 발견되었지만, 최근에는 포유류와 어류, 곤충에서도 각인 현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콘라트 로렌츠(왼쪽)와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니콜라스 틴베르헌.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콘라트 로렌츠(왼쪽)와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니콜라스 틴베르헌.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동물심리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콘라트 로렌츠의 각인 현상은 학습이론이나 정치학 등에서도 차용된다. 그에 대한 평가는 ‘20세기의 어떤 생물학자보다 콘라트 로렌츠를 통해 우리는 동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압도적이다.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의 늦둥이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지은 알텐베르크의 별장에서 성장한 탓에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어울릴 기회를 가졌다. 서너 살에 이미 오리와 도룡뇽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그의 집에는 새뿐만 아니라 수족관 속의 갖가지 물고기를 비롯해 원숭이 같은 동물까지 있었다.

회색 기러기 연구하던 중 각인 현상 발견

부자 아버지 덕분에 동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또한 그는 아버지로 인해 동물학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의학을 공부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오스트리아에서 뉴욕의 컬럼비아 의대로 유학을 떠났으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오고 말았다.

이후 그는 빈에서 의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동물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결국 동물학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렇게 동물학 공부에 열중하던 1930년대 후반의 어느 날, 로렌츠는 회색 기러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알에서 갓 부화하는 새끼 기러기를 관찰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끼 기러기를 어미에게 데려주는 순간 소리를 질러대며 로렌츠의 꽁무니만 기를 쓰고 따라다니는 게 아닌가. 이후에도 새끼는 어미에게 가지 않고 어디건 로렌츠만 따라다녔다. 새끼 기러기는 태어나서 처음 본 로렌츠를 자신의 어미로 각인해버린 것이다. 로렌츠는 그 새끼에게 ‘마르티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후 마르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러기가 되었다.

로렌츠의 연구는 동물 행동에서 본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비교행동학을 발전시키는 시초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동물의 행동은 학습된 것이라는 게 대세였다. 파블로프나 스키너처럼 실험실에서 동물을 관찰했기에 동물에게는 타고난 행동이나 주관적 체험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로렌츠는 자연에서 동물을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게 됐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 같은 동물 비교행동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자연 환경에서의 동물 행동을 연구한 네덜란드 출신의 영국인 니콜라스 틴베르헌, 오스트리아의 콘라트 로렌츠와 카를 프리슈가 공동수상한 것. 수상 이후 틴베르헌과 프리슈에 대해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로렌츠의 수상에 대해서는 일부 비판이 제기됐다. 우선 로렌츠의 과거 전력이 그 이유였다.

소수 인종 말살에 동조한 나치주의자

로렌츠는 빈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독일 민족주의에 빠져 파시즘 단체에 가입했다. 그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었을 때 크게 지지했을 만큼 나치즘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 빈의 심리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한 교수가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곳의 교수 영입 제안을 거절할 정도였다.

1938년 나치당에 입당한 그는 당시 독일 학계의 인종주의 및 우생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후 그는 훌륭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으며, 소수 인종의 말살에 대해 동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로렌츠는 나치의 단순 가담자로 분류돼 처벌 받지 않았다.

로렌츠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대표적 사례가 1963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공격성에 관하여’에 대한 반응이다. 물고기의 공격성을 우연히 관찰한 게 계기된 된 이 책은 동물과 인간의 공격적 행동은 자연적 본능이 기인하므로 일정 간격을 두고 배출해야 된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동물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로써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과 개인적 상황을 모든 사람의 일반적 상황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노벨상 수상 당시 그의 대표 업적으로 소개되었던 각인 현상 역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로렌츠가 그 현상을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스폴딩이라는 생물학자는 19세기 말 병아리에서 그 현상을 이미 발견했으며, 로렌츠의 스승인 오스카 하인로트라는 조류학자도 어린 새들의 각인 현상에 대한 연구 기록을 남겨 놓았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로렌츠에게는 생리의학상보다 어쩌면 노벨 문학상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비야냥대기도 했다. 그의 업적이 과학적 발견보다는 다른 이의 연구를 잘 전달하는 과학 저술가로서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실제로 그는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으며, 항상 신선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언어를 구사하는 달변가이기도 했다. 이런 비판 속에서도 그는 동물행동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킨 창시자이자 야생 거위의 아빠로서 여전히 독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독보적인 동물학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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